공동체

문연상
2024-02-22
조회수 244

(통신33/19.11.19)

1.

1년을 넘겨서 통신기록을 남깁니다.

많이 바쁘기도 했고, 그만큼 글자에 게을러진 탓에 뜸했습니다.

카페는 2년이 되어서 자리를 많이 잡았고 청년들도 같이 잘 지내고 있습니다.

신입으로 들어온 범*군은 3월부터 이곳 생활을 시작해서 9개월 정도 같이 보냈습니다.

많은 일들이 있었습니다.

지금은 조용해서 고요하기까지 합니다.

사는건 비슷합니다. 밥먹고 일하고 놀고 쉬고, 또 밥먹고 일하고.

반복되는 일상을 살아가는 건 누구나 마찬가지인데, 무엇을 많이 가졌고

무슨 일을 많이 어떻게 했느냐, 보다는 그 일상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견뎌내면서 나아가느냐,가 기본이고 중요한 지점이라는 것을 새삼 많이 느끼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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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 여기는 공동체인가요? 하고 묻는 분이 있습니다.

공동체가 무엇인지,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 달라서

그렇다고도 하고 그렇지 않다고도 그때그때마다 답을 하고 있습니다.

공동의 공간에서 무언가를 함께 해 나가고 있다는 점에서는 공동체이고

어느 하나의 목표를 향해서 다 내려놓아야 한다는 것에서는 아니라고.

전에는 공동체여야 한다고 여겼습니다. 동일한 목적을 위해서 내것을 내려놓은 사람들의

모임으로. 하지만 이제는 좀 달리 봅니다. 그런 공동체는 의미는 있을지 모르지만

그 목적이 오히려 사람을 덮어씌우고, 윽죄고, 그래서 흩어지게 하는 일들이

일어나게 만드는 겁니다. 공을 높이 세게 찰수록 뛰는 사람은 숨이 차고 지치지만

조금씩 앞으로 차나가면 그만큼씩 풀어가는 거니 훨 쉽게 갈수 있는 것 처럼.

그래서 먼발치의 이상은 내려놓고 앞에 있는 것들을 보면서 나아가려고 합니다.

앞에 있는 사람들. 내게 주어진 일들. 시작한 캠프힐의 운영과 조금 앞을 위한 걸음에 대해서.


거창한 단어를 남발했던 과거가 있습니다.

다같이, 함께, 끝까지.

이런 단어는 듣기에 참 좋습니다. 굉장히 선동적이어서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곤 합니다. 이런 단어를 넣어서 문장을 말하면 뭔가 있어 보이는 걸 넘어

대단하게까지 보일 겁니다. 하지만 언제부턴가 왠만하면 이런 단어를 쓰지 않습니다.

공동체라는 것을 강조하면서, 사람들을 끈으로 묶어놓는 그런 식의 말들이

시간이 흐르고 상황이 바뀔때 어떻게 거꾸로  변하는지  알기 때문입니다.

이런 단어는 말로 하는게 아니라 몸으로 하는 거고

다른 사람한테 해야 하는게 아니라 나한테 해야하는 거지요.

공동체라는 말도 그래서 함부로 하면 안쓰려고 합니다. 그만큼의 책임과 결의가 없이

마구 쓰게 되면 오히려 그 반대가 되는 거라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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캠프힐은 장애가 있는 분들이 장애가 없는 사람들과 마을에서 모여 살아가는 곳입니다.

이곳에는 15명 정도의 사람들이 있고,

주변에는 부모님들이 이사와서 몇가정이 흩어져 살고 있습니다.

대안학교를 하면서, 아니 그 이전, 그러니깐 학령기 이전부터 맺어왔던 관계를 잘 발전시키면서

성인기의 대안적 삶을 위하여 준비하여 이곳에 들어왔습니다.

우리는 단절된 교육을 지양하면서 장소와 시간에서 일반화가 이루어질 뿐만 아니라

성인기와 그 이후까지도 연결되는, 일종의 연착륙을 그리면서 왔습니다.

졸업이라는 것이 하나의 매듭이 되어 새로운 영역으로 던져지는 것이지만

준비되지 않은 사회에서 누군가는 소외의 자리에 놓이게 된다는 점이 분명하게 보였고,

그래서 졸업이 매듭으로 끝나는게 아니라 '연착륙'이 되는 길을 모색한 거지요.

캠프힐은 그 노력의 결과인 셈입니다.

성인기로 들어서는 발달 장애인이 직업과 삶이라는 두가지 세계를

적절하게 이루어나가는 것을 소망하는.


2. 2년 반 넘어가는 동안 외형은 크게 바뀐게 없습니다.

옆 마당에 놓여있던 컨테이너를  뒤 농장으로 옮겨 놓은 것 빼고는.

연못과 돌담, 네 동의 건물과 잔디밭, 벚나무로 둘러쳐진 경계와 그 너머 멀리 마니산까지.

마당으로 햇살이 쏟아져 들어오고

구수한 빵 내음과 커피향이 카페 밖에까지 흘러나오는.

붉은 백일홍의 빼어난 자태, 넓은 잔디정원, 농장 뒤로 펼쳐진 진강산.

그리고 몇명의 청년들.

청년들은 카페에서 농장에서 집에서 전보다 훨씬 편하게 지내고 있습니다.

제 집처럼 다니고 있습니다.

여기는 울타리가 없습니다. 현관을 나오면 마당이고 마당을 나오면 앞집이고 옆밭이고 뒷집입니다.

아직은 혼자 나가는 일은 없습니다. 대신 이곳에 있어야 할 곳에

잘 있습니다. 안전이냐 독립이냐, 우리는 좀더 독립적이며 자유로운 것을 선택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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빵꾸러미 사업을 시작한지 1년이 되어

빵일이 좀 늘었습니다. 회원을 모집해서 한달에 두번 빵을 택배로 보내는 건데

찾는 분들이 많아 꾸러미하는 날은 바쁘게 돌아갑니다.

처음 이곳에 들어올때, 무엇을 하여 먹고 살 것인가,

정부 지원을 너무 일찍 쉽게 받아먹지 않고 조금이라도 자립적으로 노력하면서

살아갈 수 있는 길을 찾으면서 정해진 일이 천연발효빵 사업입니다.

이스트에 설탕같은 몸에 안좋은 것들을 최소화하고

식사로 가져갈 수있는 자연의 빵을 만들자는 건데,

이제는 많이 자리가 잡혀가는 듯 합니다.

나오는 빵의 레벨을 봐서도 그렇고 찾아주는 분들도 마찬가지고요.

먹어주고 마셔주는 그런 장애인 직업은 아니어야겠다고 맘먹고 다져온 노력이

조금은 이루어지는게 아닌가 합니다.


농장일은 11월 들어오면서 많이 줄었습니다.

고구마를 많이 심어서 힘들긴 했지만 마지막 판매까지 깔끔하게 마쳤습니다.

들깨도 온수리 방앗간에 가서 들기름으로 담아 놓았습니다.

참깨는 한다고 했는게 그만 여름장마에  널어놓은 깨가 죄다 젖어 싹이 나버려서

얼마 건지질 못했습니다.

청년들은 해마다 일하는 실력이 다릅니다.

자기 일로 받아들이는 모습입니다.

정교한 것들 몇가지만 빼고는 훌륭한 농부가 될 소질을 보이고 있습니다.

한가지 일을 동일하게 하는게 아니라 각자가 잘 할 수 있는 것으로

활동을 해나가기에 다른 곳보다 훨씨 나을 겁니다. 동일한 자리에서 똑같은 일을

되풀이 해야 한다면, 아무리 그런 성향의 사람이라고 해도 갑갑하고 지루할 수 밖에 없는 건데

이건 매일매일이, 그 안에서 선택할 수 있는 것들이, 각자에 따라 얼마든지 조정이 가능한거라

훨 나은 직업이 될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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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올해는 양봉을 제대로 해 나가고 있습니다.

40통으로 시작을 해서 천연숙성꿀을 40말 받았고

80통을 만들어서 월동을 하려고 준비중입니다.

양봉은 꿀과 꽃가루, 프로폴리스, 로얄제리... 너무나 이로운 것들이 많아

강화에 처음 들어올때부터 시도하려고 했었고

올해가 되어 본격적으로 하게 되었습니다. 벌침이 아프고 위험할수도 있으니

방충복을 필해 입고 하는데, 그래도 청년들은 왠만해서는 벌통근처에는 오지 않도록 하고 있습니다.

대신 나르고 옮기고, 꿀을 담아 포장을 하면서 일을 거들게 됩니다.

꿀이 흐르는 땅, 사람에게 이로운 것을 나누고

자연을 살리는 일. 장애인이 도움을 받는 위치에서

누군가에게 도움이 될수 있다는 것을, 조금 실현해 보는 것도 의미가 있겠지요.

그런데요... 꿀이 너무 좋아 수익사업에 많은 도움이 되고 있답니다.


양봉은 보통 두가지 방식으로 합니다.

꽃이 필때 이동을 하든지 아니면 고정으로 한곳에서 하든지.

여기는 고정으로 놓고 주변의 밀원을 최대한 활용하게 됩니다.

진강산쪽으로 아카시아와 야생화가 상당히 많고

마을에 밤나무도 여러그루 있어 괜찮은 편입니다.

몸을 많이 써야 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양봉기술'이어서 아무나 하기는 어려운건데

다행이 몇년 고수가 근처에 있어서 기술을 익혔고

주변에 밀원도 괜찮아서 올해는 꿀이 제법 들어왔습니다.

그래도 멀리 내다보고 꿀이 많이 나오는 식물을 많이 심어놓으려고 합니다.

헛개, 쉬나무, 바이텍스 등등.


아마 양봉일 때문이었을 겁니다. 올해 유난히 어깨가 많이 아팠습니다.

무거운 통을 들어올렸다 내렸다, 수도 없이 반복하다보니

무리가 된듯 합니다. 시월 너머 십일월 되면서 일이 줄어드니 아픈 통증도 거의 가셨습니다.

기술이 부족하면 몸이 고생이긴한데 어쩔수 없이 겪게어야할 과정인듯 합니다.

덕분에 한의원과 침술원을 많이 다녔습니다.

겨울 나는 동안 몸을 잘 만들어놓아야 겠다고 맘먹고 있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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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대안학교 학생들이 와서 농사일을 거들고

체험학습으로 빵을 배우고, 진로실습으로 생활을 같이 했습니다.

부산 발도르프 학교, 부천의 산학교, 청계발도르프 학교 학생들입니다.

고구마 일이 많았는데 얼마나 도움이 많이 되었는지 모릅니다.

내년에는 더 많이, 더 자주 올 수 있도록 문을 열어놓으려고 합니다.


많은 기관에서 탐방을 오셨습니다.

개인적으로 오신 분들도 많았습니다.

정성껏 설명을 드리고, 도움이 되도록 한다고 했는데 어떤지 모르겠습니다.

발달장애 성인기 주거와 직업의 대안적 활동에 대한

내용들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고 설명도 하고.

겉으로 보이는 것들이 다가 아니어서 보이지 않는 무엇을,

여기까지 오면서 겪었던 것들, 힘들었던 것들까지도 도움이 된다면

설명을 해드렸습니다.

반짝거리는 것들이 다 금은 아니라고.

보이는 것들이 다가 아니어서.

오느라 애썼던 것들, 힘겨운 것들이 어쩌면 더 소중한거지요.

찾아와 주신 많은 분들께 고마운 마음을 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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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사람 속에 살고 있지만 사람이 그립지요.

옆에 있어도 마음이 통하지 않으면 고독속에 있게 되고.

소통을 하려고 노력합니다. 꼭 말이 아니어도.

눈빛과 손짖과 마음으로 라도.

삶은 우리가 아는 것보다 훨씬 많은 것을 담고 있어서

옆에 잘 앉아 있는 것만 해도. 그냥 같이 있기만 해도 훨씬 잘 통하는 경우가

많더라고요.

가을 햇살에 일하다가 장갑을 벚고 벤치에 앉아서 먼 하늘을 쳐다보는데

옆에 '너'가 있지요.

항상 있는 '너'인데 그때 너는 햇살이, 휴식이, 하늘이 나랑 같이 주어져 있지요.

말이 아니어도 됩니다. 바람은 같이 불어오고

온기는 저절로 나눠집니다.


프로그램화 된 것을 좋아하지 않습니다. 규격화 해서 재단되어진

활동 같은 것들. 토방에 앉아 일없이 편히 앉아 노는게 차라리 더 낫다고 봅니다.

하지만 나 혼자 있는 곳이 아니어서, 그 프로그램 된 활동을 몇개 하고 있답니다.

미술활동, 영상수업, 춤, 간판만들기

올해 들어 새로 만들어진 시간입니다. 잡코치가 아니라

외부에서 오신 분들이 진행하는 일종의 수업입니다.

청년들은 너무 좋아라 합니다. 아마

똑같은 사람이 아니어서

밖에서 오는 사람이어서

젊어서

예뻐서....

내년에도 뭔가 프로그램화된 일을 도모 하려고 준비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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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많이 추워졌습니다.

보일러 계기판 조작을 청년들에게 알려주고 있습니다.

추우면 올리고 더우면 내리고.

일정한 온도를 유지하도록 스스로 조작하는 기술입니다.

내 방은 내가 관리하는 거지요.

다른 사람이 내 온도까지 결정을 내리는게 아닌.

조금씩 더 내 것은 내가 알아서 하도록 하게 합니다.

언제까지 부모가, 교사가 알아서 해주겠어요.

일찌감치 스스로 하도록 가르치는 것이 세상을 내것으로 살아가도록 돕는 길이지요.

독립.. 이라는 것.

스스로 존재하는 삶에 대해서 깊이를 더해가야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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